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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제일고등학교총동창회

역사관

역사관 설립 이야기 / 명예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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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관 큐레이터


                                                                                                                 명예관장 정철교 


내가 우리 모교에 교사로 재직하고 있던 1998년 가을 어느 날, 홀로 만추의 낙엽을 밟으며 교정을 산책하던 중 우연히 참신한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그것은 모교에 역사관이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1938년에 개교하여 60주년이 되었으니 이제는 전통 깊은 학교다운 역사관이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나 홀로 구상이었다. 그로부터 내 머릿속엔 온통 역사관 생각이 떠나지 않고 있었는데 드디어 2000년도에 들어서면서부터 동창회에 나의 구상을 알리고 본격적으로 동창회와 함께 각종 사료史料 수집을 시작했다. 학교 내에 아무 계획 없이 그냥 여기저기 보관 되어 있던 사료들을 찾아내고 경향 각지에 거주하고 있는 동문들로부터 사료 수집을 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지만, 그래도 당시에는 원로 동문님들이 많이 생존해 계서서 귀한 사료들을 수집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동문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많은 사료가 수집 되었다. 이렇게 하여 약 7년간 수집한 사료들을 2007년에 학교 내에 있던 구舊 동창회관 건물 1층에「사료관」이란 이름으로 개관하였다(제18대 동창회장 제19회 손종영). 그러나 수집한 사료가 많고 장소가 비좁아 일부만 전시하고 많은 사료는 창고를 수장고 대용으로 보관할 수밖에 없어 늘 아쉬워하고 지냈다. 

그러던 중 2018년 모교가 개교80주년을 맞아 80주년기념관인「용봉에듀센터」를 건립하면서(제31대 교장 이중구 · 제23대 동창회장 제29회 김남훈) 그곳에 사료관 사료와 수장고에 보관하던 사료를 옮겨 새로이「역사관」을 꾸미게 되었는데 그 일을 내게 부탁해 왔다. 인사이동 때마다 이 학교 저 학교로 이동 근무하는 교직원들이 학교 사료에 관해 잘 모르기도 하지만 애당초「사료관」을 기획하고 만들었던 내가 아무래도 적임자라는 생각에 모교에서 정년퇴임한지도 10년이나 지난 내게 부탁해온 것이다. 이렇게 하여 나의 모교인 강릉제일고등학교에는「역사관」이 신장개관 되었다. 아마도「사료관」시절로부터 치면 고등학교역사관으로는 선구적이 아니었을까 생각 되기도 하고 새로 개관한「역사관」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고 자부하고 싶다. 실로 20세기에 구상한 역사관이 21세기에 제대로 된 면모를 갖춘 셈이다. 이제 모교역사관에는 계속해서 새 역사 창조에 따른 새로운 사료 전시가 이어질 것이다. 역사관이 신장개관 하니 교직원과 재학생들은 물론이요 많은 동문들과 ‘중등교장 단’, 타교교직원 및 타교동창회원, 일반시민 등, 외래 방문객이 심심찮게 전국 곳곳에서 찾아온다. 다른 학교들도 벤치마킹에 관심을 갖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누군가 학교 역사를 소개하고 역사사료들을 설명할 안내자가 필요한데 역시 교직원 중에는 적임자가 없으니 이를 어쩌나. 또 내게 그 일마저 맡아 달라고 한다. 처음에는 좀 더 젊은 후배가 맡아야 된다는 생각에 망설였지만, 모교80년사 역사책도 편찬하고 또 모교에 오랜 기간 재직하며 역사관을 기획·설립한 내가 적임자라며, 힘들더라도 맡아 달라며 동창회이사회에서 결의하여 모교의 동의를 얻어 위촉해 왔기에 결국 요청을 뿌리칠 수 없어, 등 떠밀려 지금 그 일을 하고 있다. 역사관 명예관장으로 봉사(시간적 기부)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역사관 큐레이터curator(박물관이나 역사관, 미술관에서 자료 전문 담당자)다. 오랜 기간 준비하여 어렵게 마련한 역사관이 완전히 기틀을 잡을 때까지는 최초의 기획자였던 내가 좀 더 관여해야겠다는 마음도 있다. 방문객에게 사료에 관해 상세히 설명해 드리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니까. 아무래도 내 뒤를 이을 후배에게 인계할 그때까지는 맡은바 임무를 다해야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물론 적임자 후배가 속히 나오길 기대하고 있지만 아마도 여태 그래왔듯 당분간은 역사관 등대지기를 면치 못할 것 같다. 개별방문은 물론이요 졸업60·50·40·30주년 등을 맞아 단체로 모교를 방문한 동문들이 내 안내를 받고 흡족해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낀다. 졸업70주년을 맞은 동문 단체관람을 만나지 못해 기다리는 마음이었는데 드디어 제11회 동문들께서 졸업70주년을 맞아 단체방문을 하셨다. 졸업70주년이면 졸수(卒壽:90세)이니 장수시대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이제 졸업80·90·100주년 동문들의 단체방문을 염원해 본다. 역사관을 찾아온 동문들이 전시된 사료를 보고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모교 출신임을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최초 역사관 설립을 구상하던 그때를 회상하며 역시 역사관을 개관하기 참 잘 했구나 하는 생각이다. 더구나 역사관을 방문한 후배 재학생들이 선배들의 빛나는 업적과, ‘모교를 빛낸 자랑스러운 동문’들 부스booth 앞에서 희망과 용기와 자긍심을 느끼는 모습을 바라 볼 때면, 이것이 바로 역사관 설립의 목적달성이라는 생각에 가슴 뿌듯함을 느낀다. 지금까지는 모교에 세 번에 걸쳐 모두 15년간 재직하며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했고 또 모교 역사책인 『江陵第一高等學校八十年史』도 책임편찬 했던 것을 큰 자랑으로 여겨 왔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모교를 위해 내가 한 뜻있는 일에 역사관 설립도 빠질 수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지만 최초 그 기획을 내 자신이 했고 또 마무리까지 책임지고 이루었다는 것에 남다른 자부심을 갖는다.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이 말했다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A nation that forgets its past has no future)’는 명언은 시사示唆하는바가 크다. 역사는 현재에도 미래에도 중요하다.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적은 바뀔 수 없습니다. 

모교는 영원한 마음에 고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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