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마크
  • 접속자 14
강릉제일고등학교총동창회

동문 에세이

땅을 찍고 엎다가

  • - 첨부파일 : 6.JPG (284.1K) - 다운로드
  • - 첨부파일 : 1.JPG (169.4K) - 다운로드

본문

“관찰은 문명의 눈을 뜨게 한다."


내가 사는 집 텃밭에 땅을 갈아엎으려면 한 삽, 두 삽. 수천, 수만 삽을 찍어 넘겨야 된다. 인내가 필요하다.

경운기를 쓰기도 어중중하고 하여 손수 삽으로 갈아엎는다.
작년에는 동네 후배가 지나가다가 텃밭을 갈아주어 쉽게 넘어갔는데 금년에는 부탁하기가 뭐해 내가 손수 밭을 갈아엎기로 했다.

작년에 기계로 갈아 엎다보니 금년에는 자꾸 경운기생각이 나서 무척 힘들다. 초심으로 돌아가 경운기로 잊고 본래의 모습으로 땅을 삽으로 갈아엎으니 마음이 편하다.
사람이란 참으로 간사하기가 그지없다. 편하면 더욱 편한 것을 찾은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한번 편한 것에 맛을 들이면 벗어나기가 그리 쉬운 것이 아닌 것 같다.
와신상담은 그러한 의미에서 스스로 장작더미에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곰 쓸개를 조석으로 핧아 먹었을 것이다.

제한된 시간, 절기를 넘겨서는 안 되겠기에 땀을 흘리고, 손이 부르트도록 삽질을 한다.
뒤엎다가도 잠시 쉬면 새들이 와서 갈아엎은 흙에 벌레를 찾느라고 종종걸음으로 주위를 살피면서 열심히 잡아먹는다.

혹독한 겨울을 지나다 보니 벌레가 예년처럼 많지가 않다. 예년보다 20일 늦게 핀 배꽃이며 철쭉이며, 영산홍이며, 단풍 꽃이 갑자기 뜨거운 봄바람에 얼굴을 비빈다.
바싹 마른가지에 찬란한 꽃 잔치가 나무 끝에서 춤을 추고 있다.
맨가지에 피부를 찢고 싱그러운 나뭇잎과 새순, 그리고 찬연히 빛나는 꽃들을 피우기 위해 고통은 없었을까

도대체 저렇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물질과 에너지는 어디에서 생성되는가.
그리고 어김없이 절기를 거르지 않고 자연의 순리에 한 번도 거역하지 않고 따르는 저 순박함은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일까

아름답게 형형색색 꽃을 피우는 것은 타고난 유전자에 의해서라지만 따스한 봄날 새순을 피우기위해서는 지난 가을 옷을 벗고 죽은 듯 엎드려 에너지를 뿌리에 내려놓고 훗날을 기약하면서 인고의 시간을 보낸 까닭이다.

봄 꽃 향연은 지난 가을날의 찬연한 죽음으로부터 긴 겨울을 웅크리고 기다린 결과이다.
꽃은 아무 때나 피지 않는다.
비에 젖고 바람에 흔들리며 적정한 낮의 길이와 온도가 감지되어야 기지개를 켜고 피기 시작한다.
산야에 피는 꽃은 나무숲이 우거져 응달이 되기 전에 틈새에 속전속결로 피워낸다.
봄날 양지에 빨리 피워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봄 야생화는 꽃이 작다.
작아야 혹시 올지 모를 한파를 이겨낼 수 있고 빨리 꽃을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온갖 식물은 겨울의 추운 기간을 계산하는데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야 봄을 인식하고 새순을 내고 꽃을 피울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미리 죽음을 스스로 맞이하며 지하에서 숨을 죽이다가 정교한 센서에 의해 감도를 측정하고 자맥질을 하여 에너지를 끌어올려 생명의 싹을 틔운다.
저렇게 아름답고 찬연하게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긴 겨울이 필요한 것이다.
백두산 천지에도 한라산 백록담에서 히말리아 설산에도 기어이 꽃을 피우고 만다.

자연의 순리를 저버리지 않고 꽃을 피우는 집념을 관찰하다가 문득 사람에게 마음을 돌려본다.
공자는 관찰은 문명이 눈을 뜨게 한다고 하였다.

시기소이 시기소유 視其所以 視其所由
사람을 관찰함에 있어 먼저 그 사람의 행동을 보아야 하고 그 다음은 행동의 동기를 살펴보아야 한다.
찰기소안 인언수재 察其所安 人焉廋哉
그리고 난 후에 행동의 목적을 살피면 그 사람의 사람됨을 알 수 있다. 그 사람됨을 속일 수 없는 것이다.

세심한 관찰은 큰 공을 세울 수 있는 근원이 된다. 관찰은 연구력을 몰고 온다. 연구는 발명을 낳는다. 발명은 과학의 슬기를 자랑한다. 과학의 슬기는 학문을 논한다. 학문은 사물을 관찰하는데 그 출발에 있다,

관찰한다는 것은 오관 (五官 눈, 코, 귀, 혀, 피부)을 이용하여 무엇인가를 살핀다는 뜻이다.
예술가는 자연과 인생을 진실로 관찰하면서 표현을 한다. 오늘을 잘살아 가도록 관찰하고, 내일의 보람을 찾도록 관찰해야 한다.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관찰하다가 문득 생각나서 적어본 말이다.
312 0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