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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제일고등학교총동창회

동문 에세이

필화 筆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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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필화 筆禍”


언제나 글을 쓰면 두려운 게 있다. 필화 筆禍이다. 붓 끝에 오는 화이다.
남의 가슴에 상처를 주지 않았는지 하는 생각을 해보면 붓을 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해본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어디 그런가? 할 말이 있고 전해줄 말이 있고 떠드는 사람이 있고 글 쓰는 사람이 있어야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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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쓰면 산 냄새가 나고
바다 글을 쓰면 바다냄새가 나고
저자거리를 쓰면 시궁창 냄새가 나고
사람에 관한 글을 인간 체취가 난다
생선엔 비린내가 나야 맛이 있고
산나물엔 향긋한 맛이 우러나야 제 멋이 난다.

법정스님은 산에 머물러 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산을 찾는다.
도시사람들은 신선한 감로수로 가슴을 적신다고 하였다.
스님은 속세를 등지고 산중에서 외로워서 썼다고 하지 않으며 넋두리라고 하지 않는다.

어느 덧 계절이 꽃 피는 춘 삼월이다. 매화향기 그윽하게 우려내는 봄 날씨다.
양지쪽 산수유가 기지개를 피고 새롬 새롬 애기 같은 웃음을 머금고 있다.
봄철이 돌아왔나 보다
계절의 맛을 느꼈으니 나도 이제 철이 들었나 보다.

‘철부지’는 철을 모른다는 말이다. ‘부지’는 한자로 不知이다. 철을 안다는 것은 4계절의 순환에 맞추어 산다는 의미이다. 여름이 와서 더우면 옷을 벗고, 겨울이 와서 추우면 옷을 껴입어야 한다. 여름에 털옷을 입고, 겨울에 삼베옷을 입으면 철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 과연 벗을 때인가, 껴입을 때인가? 철을 아는 일은 쉽고도 어렵다.
그걸 알면 철부지가 아니다.

들녘에 아지랑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뒷동산에 할미꽃은 수줍어 고개 숙이고 제비꽃 패랭이 꽃 보라색의 청초함, 냉이 꽃 꽃다지의 은근 온유한 꽃 들이 꽃 핌을 경쟁하고 있다.
꽃들은 나무들이 옷을 입기 전에 빨리 피려 몸부림친다.
햇빛에 가려지면 결실을 맺기 힘들게다.

어릴 적 나의 뒷동산 솔밭에는 남대천에서 잡아 올린 꾹저구가 가마솥에 한가득 끓어오르고 막걸리에 아저씨 아낙들이 노들강변 노래를 부르며 치마, 바지저고리가 솔바람이 휘날리며 흥겨워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 사람들이 왜 저렇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밖에서 국을 끓이며 놀까?
하였다.
그리고 나는 누고보다 먼저 아침 일찍 일어나 그 놀던 자리에 가서 땅이 뚫어지도록 훑어본다.
동전이 나온다.
봄철에는 꽤 짭짤한 재미가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용돈이 없던 시절이라 봄철 주말이면 의례히 기대가 되던 시절이 하얀 전설로 아스라이 멀어져 가고 있다.

올해에는 그럭저럭 대관령에 눈이 많이 내려 남대천 물은 다뉴브 강처럼 출렁거리며 동해로 흘러가고 있다.

이번 주 주말에는 겨 우네 매서운 대관령 바람을 막으려고 봉했던 문짝 테이프를 걷으려 했는데 주말에는 날씨가 춥단.
바늘구멍이 황소바람처럼 들어오는 내 방이 추워서 지난 해 공군에 근무하던 친구가 나의 방에 들어왔다가 추워서 선물로 준 양은 테이프로 촘촘히 붙여놓았다.
나야 이 넓은 세상에 내 집 한 칸 없이 허름한 남의 집에 살다보니 언제나 비어있어 좋다.

그런데도 외풍을 막고 한겨울 날 수 있었지만 아주 추울 때에는 방안에 얼음이 얼 정도였다.
사람들은 시골 전원에 살면 참 행복하겠다고 한다.
나는 그때 마다 맑은 공기만 먹고 살 수 있는가? 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이제 계절의 틈바구니에서 봉한 테이프를 떼면서 절기를 느끼기 시작하였으니 철부지는 아닌가 보다.

두루 일상사 일을 보다가 틈틈이 삽으로 땅을 뒤집고, 괭이로 땅을 찍어내고, 호미로 걷어 올리면서 땅과 씨름을 할 때가 온다.
지금 눈이 내리지만 봄눈 녹듯이 사라질 것이다.
주면 주는 대로 결실을 맺어주는 텃밭에는 올해에는 계분을 넉넉히 신청하였다.
무얼 심을까 고민해야 겠다.
텃밭에 심은 채소며 과일은 대부분이 오는 이 가는 이에게 준다.
집에 대문도 없어 지나가는 사람도 따 먹기도 한다.

거짓말 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베푸는 텃밭에는 벌써부터 텃새들이 울음으로 영역싸움을 하고 있는데 3월 25일 춘설이 매화꽃망울에 앉아 꽃눈을 비비고 씻고 있다.
봄은 도도히 흐르는 얼음장 밑에서 기지개를 펴고 꽃 눈 속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라는 말을 써야 할 때는 지났지만 암튼 올해는 눈이 많이 와 풍년이 될 한해에 모든 이들에게 행복이 충만한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철을 알고 나면 세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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