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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제일고등학교총동창회

동문 에세이

나락 모가지를 끊었다가

2008.09.02 10:58 2,896 3 292 0

본문

나락 모가지를 끊었다가
 

옛날에 절에 사는 스님이 조그만 아이를 하나 데려다 길렀다.
아마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는 아이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데려다가 길렀는데, 나이가 한 여남은 살 먹으니까 공부를 가르쳐서
상좌를 만들었다. 말하자면 꼬마 중이다.
상좌가 똑똑하고 말도 잘 듣고 하니까, 스님이 자주 심부름을 보냈던 모양이다.
『저 아래 마을 아무개네 집에 가서 시주 쌀을 보내라고 일러라』
『산 너머 암자에 가서 아무개 스님 오시라고 일러라』
이렇게 심부름을 보냈는데, 하루는 상좌가 마을에 심부름을 갔다가 돌아
오는 길에 길가에 누렇게 익은 나락을 봤다.
나락이 잘 익어서 고개가 축축 늘어져 있었다.
상좌가 그걸 보니 하도 탐스러워서 대체 낟알이 몇 개나 붙어 있을까 세어
보려고 세 송이를 끊었다.
끊어서 들고 절에 돌아왔다.
그런데 스님이 그걸 보고는,
『너 왜 나락 모가지를 끊어 가지고 왔느냐?』
하고 묻는다.
『예, 이삭이 하도 탐스러워서, 대체 낟알이 몇 개나 붙어 있나 세어 보려고
  끊어 왔습니다』
그랬더니 그만 스님이 불호령을 내린다.
『그 논 임자는 피땀 흘려 그렇게 농사를 잘 지어 놨는데, 네가 장난삼아
  곡식 이삭을 끊었으니 그 죄가 크다. 내가 너를 소로 만들 터이니, 그
  집에 가서 이삭 하나에 한 해씩 삼 년 일하고 돌아오너라』
스님은 도술을 부리는 스님이었다.
상좌를 소로 만들어 가지고 마을에 내려 보냈다.
소가 된 상좌가 나락 주인 집 앞에 가서「음매애」하고 울면서 서 있으니까
주인이 데리고 들어갔다.
주인이 소를 데려다 외양간에 매 놓고 아무리 기다려도 찾아가는 사람이
없으니까 데리고 일을 시켰다. 삼 년 동안을.
삼 년 동안 밭도 갈고 논도 갈고, 풀 먹고 외양간에서 자면서 일을 했다.
그러다 보니 코뚜레에 꿰인 코에는 피가 맺히고 발굽은 떡떡 갈라지고
목덜미에는 멍에를 지느라고 닳아서 반질반질해졌다.
그럭저럭 삼 년이 지난 뒤에 스님이 논 주인 집에 와서,
『이 소가 일을 잘 합디까?』
하고 묻는다.
그러니 주인이,
『아이고, 잘 하다뿐입니까? 이 소 덕분에 우리 농사가 몇 배나 잘 되었
  답니다』
한다.
그제야 스님이 종이에 글을 몇 자 써 가지고 소한테 던졌다.
그러니까, 그만 소가 다시 사람이 되었다.
주인은 기겁을 해서 뒤로 나자빠지고, 스님이 자초지종을 차근차근 이야기해 주니까,
『아이고, 그깟 나락 세 송이 때문에 삼 년씩이나 소로 만드셨어요?』
하고 탄식을 한다.
그러니까 스님은 허허 웃으며,
『소승은 어렸을 때 절간에서 쌀을 씻다가 쌀알 세 개 흘린 죄로, 한 알에
  한 해씩 삼 년 동안 소가 되어 일한 적도 있소이다. 거기에 견주면 아무
  것도 아니지요』
하더란다.
그래서 곡식을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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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3

김동범(43)님의 댓글

  예전 노암 1주공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일하던 지인이 있었는데 할루 저에게
"이보게...요번에 아파트 하수관로 공사를 했잖가"
"....."
"그런데 그거를 파내니 쌀을 일고 떠내래온 쌀 이런기 한가마니는 실하게 나오데"
하시면서
"그러니 집집이 밥 한다고 쌀 일어 쌀알이 떠내레와 이러 모인거 먹지않고 버레지는기 어지간 할끼야"
이런 얘기 들었던 적이 있었지요.

정의원님의 댓글

  ㅎㅎㅎ  쌀이 더내러온게 야----엄청많아  이짜나 바가지로 이빠이 세바가지 더 대.....

김병우30기님의 댓글

  옛말에 생쌀 씹으면 몸에 이가많이 생긴다는말 혹시 없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