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마크
  • 접속자 40
강릉제일고등학교총동창회

동문 에세이

도로의 학생부군 學生府君

  • - 첨부파일 : 1나비.jpg (109.7K) - 다운로드

본문

“도로의 학생부군. ”


심재칠

새는 날갯짓의 미숙으로 죽고 지렁이는 참을성이 없어, 다람쥐는 사랑에 취해서,
뱀은 몸을 데우려다 죽고 거미는 먹을거리 유인하다 죽고 개구리는 알 낳으러
가다가, 고양이는 날쌤을 자랑하다, 하루살이는 하루를 살다, 죽는다 달팽이는
느려서 죽고 고라니는 다리가 길어서 죽고 사람은 만용에서 죽는다

이유가 있었느니라

아스콘위에서 치이고 차이고 밟혀 넓죽해진 한 점 살코기들
까마귀의 날갯죽지가 성찬 盛饌에 전율하며
시공의 경계를 넘나들며 곡예를 한다

무릇 살아있는 것은
오는 길은 달라도 가는 길은 외길 한곳
학생부군, 동물부군, 곤충부군, 파충부군의
이름 없는 위패들

불귀의 영혼들
멈추지 않는 시간의 바퀴자국으로 미립자가 되어
허공으로 사라진다

377 0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2

김병우30기님의 댓글

  그래요  , 갑자기 숙연해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모든것의 종착역은 한곳 같은 곳이네요. 지난일을 되돌아보는 생각이드네요.

심재칠님의 댓글

  도로를 달리다 보면 윈도브러쉬 물에 씻겨 내려가는 불귀의 혼들
자동차는 무참히 살육하면서 내 달립니다.

때로는 청설모가 앞을 아른거려 교통 사고 날 뻔도 하고
다람쥐가 꼬리를 들고 달림에 아찔한 곡예운전

하루살이들의 군무 속에 무지막지한 차는 그대로 살육을 합니다.
때로는 조금 큰 곤충들이 지나가다 그만
한 점의 물로 사라지고
도로를 횡단하는 살아있는 생물체는 분명이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이쪽과 저쪽이 이웃이어서 서로 친인척이 있어서
어느 날 사돈 맺으러 가기도 하고 먹을 게 없어 양식을 꾸러 가는
동물과 곤충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출퇴근을 하면서 늘 잔인하게 죽어가는 생명체를 보면서
가슴이 아플 때도 있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성 性이 있다하여 부처는 일찍이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역설하기도 하였습니다.
도로에는 그렇게 숱한 생명들이 이유 없이 조건 없이
이승에서 저승으로 사라져갑니다.

까치와 까마귀는 달리는 차와 곡예를 하면서 그 찢어지고 밟히고
반죽이 된 시체에 눈이 멀어 하루 종일 들락날락 거립니다.
먹이사슬
어쩌면 인간도 그 먹이 사슬에서 종속적으로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결국은 지수화풍에 육신을 분해해버림에
살아있는 것들은 그렇게 사라집니다.
문명의 이기 뒤에 사라지는 무수한 생명들
자연사랑은 곧 사람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