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나의 생일 절기
2008.07.1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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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고지국 ”
고지의 절기가 빗나간 올해이다
고지는 강릉 말이며 표준어는 박이다
박은 무색, 무취, 무미로 송이와 함께 국을 끓이면
송이냄새가 나고
쇠고기를 넣으면 쇠고기 맛이 난다
박은 늘 조연이며 액스트라의 역활을 한다
제몸 울어내어 남을 준다
박은 가을에 초가집 지붕에 올려 앉아 달빛에 익어가는
가난과 다복한 가정에 상징이지만
실상은 박은 맛이 없다
송이가 다른 곳에 가서 뽐내지 못하고 박속에 들어가
자기를 나타낸다
박은 하얀 꽃으로 호박과는 정반대이다.
호박꽃이 저녁에 질 무렵 박 꽃은 피고
동이 트는 새벽 박꽃이 스러질 때 호박꽃이 핀다.
박은 죽어서도 바가지를 선사한다
바가지를 만들기 위해 쇠여물 가마솥에 푹고아
속을 숟가락으로 긁어내고 텅 비게 만든다
속을 비운 박에는 물을 가득 담을 수 있다.
비워야 담을 수 있는 것을 박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바가지는 서민의 애환과 인간적인 사랑이 듬뿍 담겨있다
솜털이 송 송 날 때 박을 따다가 속을 발려내고
굵은 소금에 간을 맞추어 먹으면 그 맛은 담백하기 이를 데 없다.
세상에 맛이 없는 것이 가장 맛있는 것이다.
우리가 먹는 밥은 맛이 없다. 달거나 쓰거나 시지가 않다.
물맛도 그러하다
물은 맛도 냄새도 없다 물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물맛이 좋다고 한다
결코 간사스럽게 맛을 내려고 하지도 않고
오로지 진실한 땅의 맛을 그대로 올린 그 맛은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은 맛으로 우리 곁에 있다.
맛이 없는 것이 오래도록 물리지 않는 것
냄새 없는 것이 오래도록 질리지 않는 것
색이 없는 것이 오래도록 미워하지 않는 것
결코 드러내지 않아도 영원히 사랑받는 것
자랑하지 않아도 그 향기 오래 머무르는 것
비바람이 불고 가뭄이 들어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담을 타고, 나무를 타고, 기둥을 타고, 가시덤불을 타고
하늘 오르는 박은 삼복지절지나
위태한 지붕위에 나뭇가지에 둥그런 알을 놓는다
나는 마당에 박 세포기를 심어놓고
박이 오르고 올라 둥근 달덩이 잉태할 집을 지었다
배고프던 시절 나의 생일날 유일하게 밥상에 오른 것은
고지국이었다
어머니가 쇠고기를 조금 사다가 고지와 함께 국을 끊인
것이 생일날 진수성찬이었다.
오늘은 나의 생일
그런데 어쩐 일인지 금년에는 이제야 꽃이 피고
18세 처녀 젖꼭지만한 박이 생길 듯 말듯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생일날 고지국을 먹지 못하는 날이 되었다.
지구의 이상기후에서 온 것일 까
아니면 박이 게을러서 그런 것일까
생일날 으레히 있어야 할 고지국이
그리운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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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8
43님의 댓글
강릉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한 저로서
선배님 같은 훌륭한 분이 계시다는 것이 넘 자랑스럽고
가슴 뭉클해 집니다
제 꼬맹이 넘 생일이 오늘 10일 이라 더욱 가슴에 와 닿습니다
환기님의 댓글
저 고지국은 그냥 맨고지에 매운고추만 몇개 썰어넣고 시원하고 알싸하게 끓여 먹어도 참 좋은데요..ㅎㅎ. 초가을철에 제맛이지요? ^^*
김동범님의 댓글
운제 한번 가면 슨생님은 그렇다 치드래도 환기 슨상님은 한글쓰 끓예주겠지머. 제수씨 손 솜씨를 난 아는데머.
박종근 (45기)님의 댓글
선배님 탄신일 말입니다..
동범이 선배보다 저가 먼저 댓글 매달수 있었는데 요 컴이 태클 거는 바람에 이제서야 올립니다...
추카 추카 추카........................탄신일을 감축 드립니다.....................요.......^^*
이충웅님의 댓글
김동범(43)님의 댓글
아참! 정신머리도.....선생님의 생신 축하드립니다.
박종근 (45기)님의 댓글
잭패질이 심했나여??? 하여간...컴이 태클을 걸긴 걸었습니다.................요..^^*
심재칠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