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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제일고등학교총동창회

동문 에세이

늙어서 미안하다

2006.11.15 17:41 3,114 0 297 0

본문

지하철 역에서 보는 현상이다. 고희는 족히 돼 보이는 노인이 메표소에 당도하여 매표원에게 멋적게 "표 한장 주세요" 하고는 묘한 표정으로 짜려보는 매표원을 뒤로하고 죄지은 사람처럼 급히 개찰구로 걸어 간다.  가끔은 노인들이 떼로 몰려 와 표를 받아 가기도 한다. 어떤 때는 매표원이 신분증을 요구해 신분증 없는 죄로 할수없이 돈을 내고 표를 사는 모습도 목격된다. 지하철 안으로 사라진 저 노인들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아마도 그들은 이렇게 중얼거리거나 가슴속으로 외칠 것이다. 더럽다. 정망 더럽다. 이 나라가 누구에의해 지켜졌으며 누구에 의해 오늘 날 이토록 풍요로운 나라가 되었는가. 내가 왜 죄인처럼 표 한장 받고 이토록 부끄러워 해야 하는가.

 

오늘날 이땅에 자유와 평화를 정착시키고 경제대국을 건설한 주역은 바로 저 노인들 아닌가.  무임 승차권 한장 받아 가며 죄스러워하는 저 노인들이 해낸 기적이고 저 노인들이 던진 희생의 덕택 아닌가. 표 한장 받아 가면서 죄라도 지은 듯 부끄러워 하는 저 모습... 70 고령이지만 얼추 젊어 보이면 신분증 제시를 요구 받는 일이 다반사다. 물론 그렇다. 지하철 사업이 적자 덩어리라고 하니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킨 용사들이라도 죽을 각오로 일해 이룩한 경제대국의 주역들이라도 공짜 표가 괜스레 부담스럽고 괜스레 페를 끼치는 것 같아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뛰는지도 모른다. 늙어서 미안 하다고 말하고 싶은 심정일께다. 늙고 병들고 돈벌이 못하니 그저 공짜 표나 받아야하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고 말았다. 늙어서 미안 하다. 늙지 않았으면 공짜 표는 받지 않았을 텐데...때로는 공짜표를 주는 정책과 제도가 원망스러웠을지도 모른다.

 

冠省하고,

 

제 8대 총선때 선거 유세를 해 본 경험으로 오늘 오랜만에 선거 유세를 했다. 서울 구로구에서 모 정당으로 출마한 제자를 위해 연설원 등록을 하고 자동차위에서 연설을 했다. 35년전의 그때가 회상되는 감격의 순간이었다. 시장 선거 후보자도 아니고 구청장 선거 후보자도 아니며 시의원 후보자도 아닌 기초의원 후보자를 위해 유세를 하게된 동기는 제자의 간곡한 요청때문이었지만 수백명도 안되는 군중을 향해 연설을 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조금은 ......

 

그러나 잘 정리된 내용으로 외처댄 사자후(?)는 여전했고 수많은 후보자 지지자들로부터  적지않은 나이에 정열적인 연설이 놀랍다는 평을 받았다. 목소리가 크고 좋아 후보자가 오히려 빛을 잃었다는 얘기도 있었고 차위에 선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후보자로 오인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소생은 "제자를 위해 나섰습니다". "제자는 정직하고 순수합니다."  "만약 당선 된후에 저의 제자가 잘못하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라는 내용의 30분 연설은 비교적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어쩐지 뒷맛은 개운치가 않다. 아마도 두가지 이유인것 같다. 하나는 외람되게도 내가 왜 남을 위해 유세를 해야하나.  왜 나를 위해 유세를 해보지 못하는가에 대한 공연한 반성 아닌 반성이 그것이다. 두번쟤 유감은 30분 연설에 카랑카랑하던 목소리가 금새 쉬어 버리는 현실적 고령(?)의 한계가 그것이다. 내일 모레 최수남군의 딸 결혼식 주례를 망칠 것 같다는 걱정이 들 정도로 목은 예 같지 않았다. 이비인후과를 갈 요량으로 최선을 다했지만...

 

 늙어서 미안 하다. 지하철 공짜 표 받아 가는 노인의 게면쩍은 모슴이나 다를게 없지 않은가. 멀지않아 공짜 표도 받아야 하고, 곧 유세도 멈추어야 하고, 얼마되지 않아 강의도 중단해야 할것이란 두려움이 미리부터 나를 가슴 아프게한다. 늙어서 미안 하다  유권자들이여, 더 좋은 복소리로 유세를 못해서. 미안하다. 매표 공무원이여, 공짜 표 받아가서 ...미안 하다. 정말 미안하다. 모든 젊은 이들이여... 정말 정말 늙어서 미안하다.

 

조영모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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