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출신 이성교 시인의 삶

“어느 솔밭 가/이름 없는 무덤에도/이상한 그늘이 져/마구 눈물이 퍼지고 있다/하얀 꽃이 피고 있다/내 하찮은 출현에도/바다는 부풀고 있다” - 이성교 시 ‘동해안을 지나며’ 중

“눈 온 날의 저녁은 / 공연히 가슴이 설렌다 / 아무 집에라도 들어가 / 무엇을 마구 얘기하고 싶다” - 시 ‘눈온 날 저녁’ 중


강원 대표 문인으로 꼽히는 이성교 시인이 2021년 12월 7일 세상을 떠났다.
 시인은 자신의 호 ‘월천’을 삼척 원덕읍 월천리 마을의 이름을 따서 지을만큼 고향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이 남달랐다. 그의 작품 대부분 고향 삼척은 물론 학교를 다닌 강릉 등을 소재로 짙은 향토성이 배어나온다. 동해안에 대한 애정도 깊게 스며들어 있다.

 대학 재학중이던 1956년과 이듬해 서정주 시인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윤회’, ‘혼사’, ‘노을’을 잇따라 발표하며 등단했다. 성신여중·고교 교사로 활동하다 성신여대 교수로 부임한 그는 인문대학장과 교육대학원장 등을 지냈다. 1965년 발간된 첫 시집 ‘산음가’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고인은 ‘겨울바다’, ‘강원도 바람’, ‘대관령을 넘으며’, ‘운두령을 넘으며’, ‘동해안’ 등의 시집을 통해 강원도를 노래해 왔다.

특히 1974년에 펴낸 시집 ‘보리필 무렵’에 수록된 ‘가을 운동회’가 중1 국정교과서에 실려 오랜기간 사랑받기도 했다. “둥둥 북소리에/만국기가 오르면/온 마을엔 인화(人花)가 핀다.//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중략) 온갖 산들이/ 모두 다 고개를 늘이면/ 바람은 어느 새 골목으로 왔다가/ 오색(五色) 테이프를 몰고 갔다”라는 구절이 둥둥 마음을 울리는 시다. 엄 창섭 시인(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과의 대담에서 이 시인은 이 작품의 모티브에 대해 “(삼척) 호산초등학교 시절의 운동회였다”고 밝혔다.

 신앙심 깊은 기독교인이기도 했다. 1982년 황금찬·유안진 시인과 함께 3인 신앙 시집 ‘영혼은 잠들지 않고’를 썼다. 한국기독문인협회 회장, 한국기독시인협회 회장으로도 활동했다. 문학평론가인 고 윤병로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평안도에는 김소월, 경상도에는 박목월, 전라도에는 서정주, 그렇다면 강원도를 대표하는 시인은 삼척 출신 이성교가 아닌가”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시인의 조카인 동해 출신 이선정 시인이 보내 온 글을 대신 전한다. “집집마다 추녀 끝에는 설날 고기가 풋풋이 말라가는데(시 ‘눈온 날 저녁’ 중) 당신은 언제 바다의 문을 열고 오실 건가요? 동해의 싱싱한 고등어를 택배로 받아들고 바다 내음이 너무 좋다시던 그 푸른 음성이 그립습니다. 당신이 넘던 대관령에도 곧 눈이 쌓이겠지요. 눈 온 날 저녁의 맑아진 눈으로, 깊은 잠 속에 묻혔던 영혼의 불빛으로, 하늘을 보겠습니다. 별의 소리로 당신을 듣겠습니다.”
바다는 여전히 부풀 것이고, 그의 시는 하얀 꽃으로 남았다. 김여진 beatle@kado.net